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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그리고 나

10월 7th, 2011

잡스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다닐 때인 듯하다. 당시 나는 아이큐2000이라는 MSX2 기종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플2이라는 컴퓨터를 동경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라는 사람이 차고에서 만든 PC인데 타자기 같이 생긴 본체 뚜껑을 열면 확장 카드를 꽂을 수 있었다. 롬팩만 꽂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애플2을 갖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울티마라는 게임 때문이었다. 울티마는 RPG의 레퍼런스 같은 존재로 당시 게이머들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애플2는 잡지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이큐2000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는데 애플2를 또 사달라고 하는 건 염치없는 행동이었다.

아이큐2000으로 열심히 게임하는 동안 몇년이 흘렀고 잡지에서 또다시 잡스를 만날 수 있었다.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고 다시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넥스트(NeXT)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검정색의 세련된 컴퓨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다. 당시 나에게 넥스트 컴퓨터는 건담과 같이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그로부터 몇년 후 나는 다시 엄마를 졸라 XT를 장만했다. 아이큐2000과 달리 이 XT는 부팅하면 DOS 콘솔 화면이 떴다. 명령어를 하나하나 입력하다 보면 뭔가 전문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하는 거라고는 게임과 베이직으로 짠 가계부가 전부였다. 그래도 허큘래스 그래픽과 8비트 애드립 사운드를 들으면서 즐겼던 폴리스 퀘스트와 인디아나 존스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름 XT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친구 봄길이네 집에 놀러가서 다시 한번 더 충격을 받았다. 봄길네 방엔 일반인이 흔히 접할 수 없는 매킨토시라는 놈이 있었다. 컬러 모니터에서 연출되는 화려한 윈도우 UI 그리고 게임들! 잡스가 만든 컴퓨터를 오랫동안 만져보는 건 처음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봄길이가 엄청 부러웠다. 이런 멋진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니!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잠깐잠깐 게임을 즐기긴 했지만 입시 때문에 컴퓨터는 점점 멀어져 갔다. 잡스란 존재도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그리고 무사히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고 공돌이가 되었다. 용산에 가서 부품을 사고 집에서 열심히 조립한 후 DOS와 윈도우즈 3.0을 깔았다. 그리고 몇달 후 윈도우즈 95를 접했다. 윈도우즈 3.0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열광했고 빌게이츠는 나의 영웅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졸업을 하고 엔씨소프트에 입사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MS 친화적인 기업이었다. 회사의 모든 컴퓨터에는 윈도우즈 XP가 깔려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다른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작업할 때 맥을 쓴다고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다 ㅎ.

6년 후 나는 엔씨를 나와서 델리마운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2번의 실패 후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용역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갑을 만났다. 6개월짜리 프로젝트는 1년 2개월 넘게 진행되었고 잔금도 받지 못한 체 소송에 휘말렸다. 함께한 동료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던 중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되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할부라는 달콤함 빠져 결국 아이폰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때마침 절스군이 돌아왔고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기에 아이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이 모든 것이 잡스가 나에게 준 선물처럼 느껴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또다시 엄마의 도움으로 2008년형 아이맥 24인치 모델을 리퍼비시로 장만하게 된다. 아이맥은 간지 그 자체였고 옆에 있는 PC들은 볼품없이 느껴졌다. 처음엔 생소한 OS X의 UI에 불편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구석구석 묻어있는 잡스의 디테일이 느껴졌다. 아… 잡스는 이런 사람이구나.

Objective-C와 XCode는 생소했지만 재미있었다. 한 자동차 수입 업체의 앱을 개발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4월부터 리피 개발을 시작했고 같은 해 8월에 앱스토어 등록 신청을 했다. 리피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였다. 몇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서비스 개발은 많은 용기와 경험이 필요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적용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러는 동안 미남1호곰썬이 합류했고 2011년 10월 커플로그라는 두번째 서비스의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잡스가 특별한 이유는 그 사람의 스타일 때문이다. 잡스는 매우 예민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몇해 전만 해도 이런 성격은 CEO로 부적합하다고 했다. 하지만 잡스는 성공했고 지금 애플은 최고다. 그리고 애플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잡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잡스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다) 비록 내가 있는 곳이 캘리포니아는 아니지만 잡스는 나의 영웅이자 롤모델이다. 그리고 언제가 잡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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